요한복음(John) 6:52 - 6:59 /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2017년 01월 23일 1 1454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생명의 떡’(35~40절)에 이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41~51절)으로, 그리고 이 떡을 ‘내 살’로 언급하심으로 자신의 정체를 더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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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kim(김경*)  
53절 이하의 말씀은 정말 어려운 말씀이다. 지금은 말씀 해석이 다 되었고 그 풀이가 우리에게 주어졌기에 이해가 쉬우나 2000년 전 예수님 당시에 내가 살았다면 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가. 당연히 논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 52절에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라고 했는데 영어 성경에 보니 argue sharply라고 써 있다. 예리하게 논쟁했다는 것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어찌 논쟁이 없을 수 있는가.
QT책에서는 이 부분에 소제목을 '.....거부하는.....'이라고 달았다.
논쟁하는 것이 거부하는 것인가? 물론 유대인들이 거부는 했으나 그들의 논쟁은 자연스런 것이고 당연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21세기를 사는 오늘날도 논쟁의 학습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그들의 학습 태도이다.
한국어 성경에서 argue sharply를 '다투는'으로 번역했으나 논쟁은 다투는 것이 아니다.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책에서 소제목으로 뺄 정도의 논쟁과 토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 가짐이 예수 믿는 이들에게 일반적인 것을 이 큐티 책에서 발견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 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분야에서도 부족한게 이 논쟁의 태도이다. 논쟁이란 단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기에 건강한 논쟁 내지 토론이 부족하다. 우리에게 논쟁과 토론이 없기에 어떻게 논의해야 할 지를 모른다. 그래서 우리 안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와 교회에 토론과 논쟁이 건강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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